하늘을 거스르는 대운하 건설 그만두고 생명의 강 모시는 옛길을 복원하라
2008-04-04 천주교인권위
강물. . . 흐르는 강물을 보고 있노라면 눈물이 난다. 자연이 빚어낸 아름다움 때문이리라. 어린 시절, 60년대 가난하고 추었던 시절이 보석처럼 아름다운 완벽함으로 기억되는 이유도 강가에서 보낸 여러 아름다운 추억 때문일 것이다. 빨래하는 엄마 옆 편편한 바위에서 빨래 방망이 두드리며 엄마 흉내 내던 일, 친구들과 멱 감으며 젖은 옷가지를 바위 위에 말리던 일, 떠오르는 아침 해를 맞으며 고운 금빛 모래로 이를 닦아보던 천진함, 어린 동생을 업고 강을 건너 저쪽 강가로 가서 놀던 추억, 그 산허리로 내리던 보슬비와 황토 흙에 섞여 있던 쑥 향기, 친척집을 찾아가며 나룻배로 건넜던 곡성 석곡 근처의 섬진강. 그 기억들은 너무 원초적 생명력으로 살아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나타나는 꿈의 내용이기도 하다.
그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이 대운하 건설을 반대하여 한강 하구 김포 애기봉에서 시작하여 남한강, 낙동강, 부산, 그리고 목포에서 영산강, 금강을 거치는 100일 기도순례를 떠났다기에 만사 제쳐두고 길을 나섰다. 엄청 추웠던 2월19일 아침 팔당대교 밑에 도착하니 존경하는 연관스님, 수경스님, 도법스님 그리고 문규현 신부님, 최종수, 김규봉 신부님, 이필완, 김민해 목사 이원규, 박남준 시인이 기쁘게 맞아주셨다. 뒤이어 수녀님들도 도착하셨다. 그분들을 만나고 팔당 모래섬에서 새벽빛을 받으며 옹기종기 모여 있는 큰고니를 바라보는 기쁨이라니. . . 내가 왜 무리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이 간절한 걷기 기도에 나서게 되었는지 자동으로 응답해주었다. 순례단은 천막을 치고 강변이나 마을회관 옆 마당에서 노숙한 후 아침 8시 30분 둥글게 모여 3분 정도의 침묵명상을 하고 출발하는데, 불교, 원불교, 천주교. 기독교 성직자들과 하루 순례 참여자들이 서로를 모시며 큰 절을 하고 떠나는 모습은 종교 간의 대화를 넘어 생명과 평화를 향한 종교 간의 일치와 감동을 보여준다. 때로는 논둑길로, 때로는 차가 씽씽 달리는 차도 옆길로, 때로는 그지없이 아름다운 강둑길로, 혹은 아직 원형을 잃지 않은 옛길을 따라 하루 15km씩 걷는데, 오후 4시 30분 침묵기도와 큰 절로 하루 일정을 마무리한다.
대운하 건설. . ? 입에 담고 싶지도 않다. 처음엔 정말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일회성 농담인줄 알았다. 어떻게 상상을 해도 그런 상상을 했을까. 삼면이 바다이고 산과 계곡으로 둘러싸인 이 아름다운 한반도에서, 북쪽으로는 두 동강 나 60년이 지나도록 섬으로 남아 있는 남녘에서 어떻게 상상이라도 그런 못된 상상을 했을까. 물욕이 하늘까지 닿아 바벨탑을 쌓고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여울져오는 양평, 여주, 문경에서조차 생태마을, 환경도시라고 자랑하는 간판을 버젓이 둔 채 천박스러운 플랜카드 ‘환영! 대운하 건설’이 나부끼니, 어쩌다 우리는 이곳까지 오게 되었을까. 어쩌다 이지경이 되었을까?
어느 눈 많이 내리던 날, 원주교구 부론성당 근처 남한강 갈대밭 옛길을 따라 절뚝거리며 걷고 계시던 연관 스님께서 하얗게 눈덮인 산천을 둘러보시고 절경에 감탄하시며 “이런 걸 두고 청복(淸福)이라고 한다”고 말씀하셨다. 맑은 복이라!! 이러한 기쁨과 축복은 남한강을 따라 양평, 여주, 그리고 묵계를 지나 문경으로 걸으며 계속되었다. 이름도 아름다운 여강과 영강을 지나고, 걷는 일이 없었다면 결코 존재조차 몰랐을 소야교 옆 솔밭에서 점심을 먹고 고모산성에 올라 눈 아래 펼쳐지는 천연의 요새를 바라보았다. 단종이 쉬어갔다는 600년 된 은행나무 밑에서 아름다운 영혼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걷는다는 것. . .몸과 영혼이 함께하는 묵상.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운하건설이 아니라면 이 얼마나 복된 걸음이겠는가. 이렇듯 강변의 옛길을 따라 걸으며 하루 일정을 마치고 묵상하다 보니 어느덧 나의 오래된 꿈이 자꾸 묵상 중에 떠오르게 되었다. 바로 이 순례 길을 따라 서울에서 부산까지, 목포에서 서울까지 자동차 없이 걸을 수 있는 도보 전용 옛길을 복원하는 것이다. 운하 말고!! 이미 있는 옛길과 강변의 자갈길, 갈대숲 길은 자연 그대로 보존하고 많이 훼손되었거나 이미 찻길로 변한 곳은 그 좋은 기술, 그 좋은 실용의 정신을 담아 조금 돌더라도 걷는 길을 이어만든다면 세계 그 어느 걷는 길에도 부럽지 않은 아름다운 길을 복원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늘 컴퓨터 즐겨찾기에 스페인의 산디아고 가는 길(까미노 데 산디아고: 산디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생장피드포르까지 807km의 도보여행도로)을 넣어두고 언젠가 비행기 값만 마련되면 날아가 그 길을 걸을 꿈을 꾸고 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조국 산천을 바라보며 배낭을 메고 한 열흘 걷고 싶지만, 매연에 차들이 씽씽 달리는 차도를 생각하면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길이 복원된다면 스페인으로 비싼 돈 주고 날아가던 그 많은 도보순례자들도 모을 수 있고 세계에서 우리의 아름다운 옛길을 보러 올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 길 중간 중간에는 우리의 옛 정취 있는 주막을 세우고 격조 있는 한옥으로 쉴 곳을 만들어 하루, 이틀 쉬어가며 목적지까지 열흘이 걸리든 일주일이 걸리든 강물 따라 걸어가는 전용 옛길을 만들자. 중간 중간에 우리문화를 알릴 수 있는 공연 터를 만들어 한바탕 어울려 놀다가도 좋으리. 제발 그렇게 하자. 수 만년 어우러져 이루어진 강물이 강물이게 하고 산이 산이게 하라. 강의 강으로서의 권리와 산의 산으로서의 권리를 그 누구도 해칠 수 없다. 제발 배가 산으로 가게 하지 마라!
- 변연식 천주교인권위원회 위원장
천주교인권위원회 소식지 <교회와 인권> 142호(2008년 3월)
<인권위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