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1월 29일 KAL 858기 사건이 일어난 지 만 14년이 지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115명의 희생자와 그들의 가족들, 그리고 "김현희"라는 이름 세 글자를
남기고 역사 속으로 묻혀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희생자 가족들과 지식인 사회에서
제기된 설득력 있는 "수많은 의혹들"도 함께 묻혀 가고 있습니다.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노력이 더 늦기 전에 시작되어야 합니다.
지난 8월 KAL기 사건으로 희생된 분들의 가족들이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
천주교인권위원회를 찾아와 진실규명을 호소하고 진정서를 제출하였습니다. 가족들
은 사건자체에 수십가지의 의혹들이 있지만 들어주는 사람도 밝히려는 사람도 없었
기에 외롭고 괴로운 생활이었다는 안타까운 마음을 전해왔던 것입니다.
이에 우리 단체들은 KAL기 사건에 대한 재검토 및 관련자료를 토대로 확인과정
을 거쳤습니다. 그 결과 KAL기 사건은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수많은 의혹들이 존
재한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또한 그 결과는 최근 발표된 '수지김 간첩조작사건'
처럼 당시의 안기부가 진실을 알면서도 정치적으로 악용했을 것이라는 의문이 들게
합니다.
하여 다음과 같이 입장을 밝힙니다.
1. 국가정보원에 촉구합니다.
지금까지 제기되어 온 수많은 의혹들은 모두 안기부(현 국가정보원)의 졸속 수사
와 사건종결로부터 기인하고 있습니다. 115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대형참사에
서 담당 수사기관이 사건과 관련된 직접적 물증을 내놓지 못한 채, 용의자의 자백
만으로 사건을 종결지은 점은 상식의 선에서 생각해봐도 용인할 수 없는 부분입니
다. 지금이라도 국가정보원에서는 전면적인 재수사를 통해 의혹을 풀어 진실을 밝
히기를 촉구합니다.
2. 김대중 정부에 촉구합니다.
김대중 정부는 지난 14년간의 희생자 가족들의 뼈저린 고통을 모른 채 해서는 안
됩니다. KAL기 사건은 '수지김 조작간첩사건' 처럼 당시 안기부가 국민의 눈을 가
리고 귀를 틀어막은 채 시국을 호도하기 위해서 정치적으로 악용한 가능성이 농후
합니다. 정부차원의 모든 수사권을 발동하여 진실을 밝히기를 촉구합니다.
3. 국회에 촉구합니다.
KAL기 사건은 결과적으로 우리 국민 나아가 민족의 아픔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나라 국민 모두를 대표하는 기관인 국회에서 진상조사단 구성 등으로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노력에 경주하기를 촉구합니다.
4. 제보와 양심선언을 기다립니다.
사건이 발생하였을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의혹은 대통령 선거와 졸
속한 수사발표, 의혹제기 당사자들의 체포 등으로 점점 역사 속으로 묻히고 있습니
다. 그러나 진실은 언제나 선한 편에서 존재하며, 반드시 밝혀지리라 믿습니다. 나
름대로의 물증을 가지고 있거나,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분들의 제보와 양심선언이
진실을 밝히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입니다.
우리는 KAL기 사건으로 희생된 분들에게 다시 한번 머리를 숙여 조의를 표하며,
가족들의 아픔에 동참합니다. 또한 앞서 밝힌 의혹들이 밝혀질 때까지 진실규명을
위한 모든 일들을 진행해 나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