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연아! 아빠가 죄인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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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연아! 아빠가 죄인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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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8.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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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고 노충국·김웅민씨 아버지, 박상연씨 빈소 방문
▲ 23일 고 노충국씨 아버지 노춘석(절하고 있는 사람)씨와 고 김웅민씨 아버지 김종근씨가 고 박상연씨 빈소에 예를 표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안홍기
[2신 : 23일 밤 10시 23분]

아들을 군에 보냈다가 제대시킨 직후 아들을 잃은 세 아버지가 다시 만났다. 박상연씨와 마찬가지로 지난해 군 제대 뒤 말기 암 판정을 받고 투병하다 숨을 거둔 고 노충국, 김웅민씨 아버지 노춘석, 김종근씨가 23일 박상연씨 빈소를 찾았다.

영정 앞에 절을 하고 난 노춘석씨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또 일어났다"며 박상연씨 아버지 박홍신씨의 손을 꼭 붙들고 위로했다. 김종근씨는 "이제는 눈물이 나오려고 해도 말라서 나오지 않는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고 박상연씨의 아버지 박홍신씨는 "상연이를 살리려고 위암과 관련된 신약을 백방으로 찾아봤다"며 "아빠는 멀쩡히 살아있는데 자식을 이렇게 먼저 보내니…, 상연이 가는 길에 '아빠가 죄인으로 남겠다'고 말했다"며 다시 한번 눈시울을 붉혔다.

"군의관이 미안하다고 한 마디만 했어도..."

박씨를 찾은 노씨, 김씨는 먼저 박씨가 건강을 챙길 것을 당부했다. 자녀의 암 투병이 부모에게는 엄청난 고통이며, 이것이 부모의 건강 또한 앗아가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고 김웅민씨 아버지 김종근씨는 아들이 세상을 떠난 뒤, 노춘석씨의 권유로 건강검진을 받고 위암 초기 판정을 받았다. 김씨는 검진 직후 수술을 받고 현재는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권유가 이제 막 아들을 여읜 박씨에게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듯했다. 박씨는 "투병생활 때 상연이가 '억울해서 못 죽겠다'고 했다"며 "제발 군에 있을때 진단한 군의관이 미안하다고 한 마디만 했으면 그래도 위로가 됐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이에 노씨는 "우리 아들을 오진하고 진단서까지 위조했던 군의관이 군검찰에게 조사받을 때 그 장인을 비롯 각 친지들이 찾아와 돈을 주겠다며 제발 탄원서 좀 부탁한다고 애원했었다"며 "군의관 본인도 찾아와 내 다리를 붙들고 '내가 아들처럼 모시겠다'고 애원해서 군검찰에 군의관의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제출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씨는 "그 이후론 아무런 연락이 없더라"며 "급할 때 한번 숙인 것을 불쌍하게 생각했고, 별 기대도 안했지만 역시 예상대로 였다"고 푸념했다.

군 의료개혁 어디까지 왔나 점검할 시점

노씨는 "아직도 집에서 무심결에 '충국이는 들어왔냐?'라고 물었다가 충국이 여동생한테 혼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라며 "내가 죽어야 잊어버리지 않겠나"라며 눈물을 떨구었다.

노씨는 또 "길을 가다 마주치는 군인들을 보면 다 내 아들 같다"며 "충국이와 웅민이가 죽은 뒤 군 의료를 개혁하겠다고 말은 많이 들은 것 같은데, 뭐가 변했는지 살펴봐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고 김웅민씨 아버지 김종근씨는 "최근 대전 현충원에 묻혀 있는 아들을 보러 갔다왔다"며 "충국이가 묻혀 있는 자리와 웅민이가 묻혀 있는 자리가 10m 정도 떨어져 있는 걸 보곤 '웅민아, 충국이하고 잘 지내'라고 말해주고 왔다"며 말문을 잇지 못했다.

박상연씨가 세상을 등진 이날, 새파란 나이에 억울하게 이승과 결별한 세 아들의 세 아버지는 밤이 깊어갈수록 더욱 긴 한숨을 토해냈다.

[1신 : 23일 오후 2시 55분]

제대직후 암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 사망한 노충국·김웅민씨에 이어 박상연(25)씨도 투병 끝에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지난해 10월 26일 <오마이뉴스>의 보도로 처음 세상에 알려진 박상연씨의 상황은 군의료체계 부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였지만, 보도 당시 회복 가능성이 있었기에 아쉬움은 더욱 크다.

고 박상연씨는 2003년 1월 군에 입대, 식사 뒤 가슴이 막히는 증상을 호소하며 2004년 11월 군병원을 찾았으나 폐질환을 의심하는 군의관의 처방으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다.

박씨는 계속되는 증상으로 12월 28일 다시 군병원을 찾아 내시경 검사까지 받았으나, '특이 병변은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제대 바로 뒤인 2005년 3월 서울 아산병원에서 '위암3기' 판정을 받은 박씨는, 위와 비장 전체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아산병원에서 항암치료를 계속하던 지난해 10월 <오마이뉴스> 보도 당시 취재진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지 못해 안타깝다"며 "반드시 암을 이겨내겠다"고 말하던 박씨의 의지와는 달리 병세는 쉽게 호전되지 않았다.

급기야 지난 1월 CT촬영 결과 다른 장기로 암세포가 전이된 것이 발견됐고, 암 4기말 판정까지 받게 됐다.

2월부터 박씨는 국가 유공자(2급)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보훈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계속했다. 그러나 병세는 계속 악화되기만 했다. 복막·직장·신장으로 암세포가 퍼졌다. 몸에 인공항문과 배뇨관을 연결해 배변을 해결하는 고통스런 상황까지 버텨냈지만 결국 암세포는 간·췌장·꼬리뼈에까지도 번지고 말았다.

직장·신장·간·췌장, 심지어 꼬리뼈까지 암 전이

최근 뼈에 전이된 암세포 증식 억제를 위해 원자력 병원을 방문, 힘든 방사선 치료를 받아오던 박씨는 23일 새벽 5시경 결국 세상을 떠났다.

박씨의 아버지 박홍신씨는 "새벽에 '잠깐 일으켜달라'길래 일으켜 앉혀놨더니 1분 정도 앉아있다가 그대로 쓰러져 운명하고 말았다"며 "앉아있으면서 '엄마 아빠, 미안합니다'라고 한 것이 상연이 마지막 말"이라고 전하며 눈물을 훔쳤다.

박씨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보훈병원에는 현재 친지들의 문상이 이어지고 있으며 발인은 오는 25일이다. 고인의 유해는 대전 국립 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오마이뉴스] 안홍기(anongi)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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