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죄인들과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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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죄인들과 다릅니다.’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08.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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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선을 열며>>

‘나는 죄인들과 다릅니다.’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욕심이 많거나 부정직하거나 음탕하
지 않을뿐더러 세리와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이나 단식하고 모든 수
입의 십분의 일을 바칩니다.”
성서의 이 대목을 읽으면서 이런 대단한 기도를 바칠 수 있었던 사람을 너무도 간단히 평
가절하하곤 합니다. ‘아! 그 바리사이파 사람은 교만해서 틀렸어.’
하지만 이 기도를 곰곰 곱씹어 보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아주 무서운 요구를 하고 계신
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사의 화두인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라. 벼랑 끝에 선 사람
에게 한 발자국 더 앞으로 나가라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실 우리 가운데 이런 기도를 바칠 만한 이가 몇이나 될 것입니까.
우선 그는 하느님께 감사할 줄 압니다. 여러 공덕을 자기 자신에게 돌리지 않고 하느님
께 돌립니다.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말입니다. 불가佛家에서 보현행원품의 맨 마지
막에, 이 모든 노력과 공덕을 내가 아닌 부처님, 이웃에게 돌린다는 회향품回向品과도 같
습니다. 저 바리사이 사람은 재물이나 명예, 권력에 대한 욕심도 없고 정직하고 음탕하지
도 않습니다. 자신을 억누르기 위해 일주일에 두 번이나 단식하고 십일조도 바칩니다. 이
정도면 성인품에 올릴 만도 합니다. 바리사이 사람이 하느님께 거짓 기도를 올리는 것은
아닌 듯하다. 예수님께서 ‘이 사람이 거짓말을 하니 틀렸다’하시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렇
습니다. 욕심 없고 정직하고 성실히 의무를 이행하는 그리고 이런 덕성들을 자신이 아닌
하느님께 돌리며 감사하는 이를 어디 쉽게 찾아 볼 수 있을까요. 이런 사람을 두고 우리
가 예수님처럼 ‘너, 아니다’라고 쉽게 이야기 할 수는 없습니다. 이 사람만큼이라도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하고 노력할 일입니다.
무욕, 정직, 성실이라는 매우 힘든 벼랑 끝 경지에까지 가 있는 이 사람을 향해 예수님께
서 마지막 한 말씀을 더 하십니다. “너, 자신을 놓아버려라, 자기를 버려라.”욕심 다 버리
고 정직하고 하느님께 감사할 줄 아는 이 사람의 마지막 남은 한 가지 흠은 ’나는 세리와
달리 욕심 없고 정직하다‘는 분별심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시험
에 드셨을 때 하느님의 아들 되기를 거절하고 하느님을 경배하고 그 분만 섬기겠다고 하
신 바로 그 지점, 바리사이는 그 지점에서 딱 걸려 벼랑 앞으로 한 걸음 더 나가질 못했습
니다. 나는 그 바리사이 사람을 대단한 이라 여깁니다. 그에 훨씬 못 미침을 고백하지 않
을 수 없습니다.
성서를 읽고 있노라면 예수님께서 이웃과의 분별심을 버리신 장면이 끊임없이 나옵니다.
유대인들에게 가장 별 볼 일 없는 취급을 받았던 세리, 과부, 사마리아 사람, 나병환자, 어
린이, 소경??? . 이들과 어울리시는 모습이 예수님 활동의 처음이고 끝입니다. 당신이 받
으신 비난도 늘 비슷합니다. “어찌하여 당신들은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는 것
입니까” “저 사람이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구나.”
작년 12월 30일 우리나라는 사형을 10년간 집행하지 않아 사실상 사형폐지국가가 되었습
니다. 사형수들의 범행을 알고 나면 폐지운동을 하는 이들도 순간 전율과 공포를 느낍니
다. ‘저 자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문득 문득 들기도 합니다. 그래도 당신께서는 분
별심을 버리고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사랑하라 하셨으니 사형은 안 됩니다. 그런데 미
국이나 우리나라 모두 근본주의라 불리는 개신교인들은 사형제를 극력 옹호합니다. 기독
교인이라는 사람들이 다른 이들을 향해 불붙는 지옥에서 고통 받으라고 서슴없이 외치고
다닙니다. 진화생물학자 도킨스는 이런 극단의 증오를 보고는 저들이 믿는 신은 만들어
진 신, 미혹으로서의 신이라고 비판합니다.
법무부는 작년 10월 차별금지법을 입법예고하였습니다. 우리 헌법은 성별, 종교 또는 사
회적 신분에 의한 차별을 하지 말라고 되어 있습니다. 차별금지법은 이를 좀 더 구체화하
여 당초 20여 가지 차별금지 항목을 정하였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내세우는 개신교지도자
들과 기업인들이 차별금지법저지운동까지 벌였습니다. 결국 병력病歷, 출신국가, 언어,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범죄 및 보호처분의 전력, 성적性的 지향, 학력 등 7개 항목이 최
근 들어 법제처 심의과정에서 빠지고 말았습니다. 외국인 노동자, 미혼모자녀, 동성애자,
전과자, 저학력자 등에 대해 계속 차별을 하자는 것입니다.
돈을 신으로 섬기는 일부 사람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예수님을 섬기는 것을 존재 근거
로 하는 교인과 성직자들이 죄인들, 없는 이들, 미혼모들은 차별해야 한다고 나서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예수님 뜻을 세상에 편다는 부시 미국대통령이 열심히 사형
을 집행했고 이라크며 아프간 등 세계 곳곳에 전쟁을 벌이고 죽음과 증오를 양산하는 것
과 다름없습니다.
욕심도 버리고 정직하고 성실했던 저 바리사이 사람의 기도에 결정적으로 모자란 것 한
가지, “나는 저 세리들과는 다릅니다.” 우리는 이런 분별심을 버리고 동성애자며 미혼모
며 전과자며 모든 이들과 사랑을 나눌 일입니다.

김형태 /발행인
천주교인권위원회 이사장

<공동선> 통권 79호【공동선을 열며】

<인권위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