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차별 큰 아픔'.. ① 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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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차별 큰 아픔'.. ① 외모
  • 허영신
  • 승인 2002.05.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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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라는 잣대
생활 속에서 무심코 받아들여지는 편견과 차별이 우리 사회엔 아직도 많다. 일상 속에 숨어 있는 이런 `관행적인 차별'은 명백한 차별 못지 않게 사람의 가치를 훼손하고, 사회적 에너지를 낭비시킨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작지만 큰 차별'의 대표적인 형태로 △외모 △나이 △병력(病歷) △인종 △동성애 등 5가지를 선정해 실상을 소개하고, 대안을 찾아본다.


얼굴이 무기다.

외모는 `작은 차별'의 영역을 뛰어넘은 지 오래다. 외모는 연애·결혼 등 사생활 영역뿐 아니라 취업·승진 등 사회생활 전반을 좌우하는 `숨은 손'이 됐다. <뉴욕타임스> 컬럼리스트 윌리엄 새파이어는 외모를 인종, 성별 등에 이은 새로운 차별요소라며, 이를 `루키즘(lookism)'이라고 지칭했다.

지난 2000년 명문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한 정혜주(가명·26)씨는 대학때 친구들 사이에서 `신화'로 통했다. 학점과 토익 점수가 만점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직장을 못 구했다. 번번이 면접에서 떨어졌다. 그는 “거울을 볼 때마다 거친 피부를 칼로 벗겨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느라 힘들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연말, 취업사이트 커리어(www.career.co.kr)가 구직자 1182명을 대상으로 `취업하기 위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조건'을 조사한 결과, 여성응답자들은 외모(20.7%)를 외국어(21.3%) 다음으로 꼽았다.

나이가 많아도 외모가 중요하다. 부산의 한 대형 할인매장에서 일하던 최아무개(53)씨는 지난해 가을 “키가 작고 뚱뚱해 눈에 거슬리니 그만두라”는 통보를 받았다. 부산여성노동자회 평등의전화 최경숙 상담원은 “이제 비정규직 중년 여성에게도 반듯한 외모를 요구하는 세상이 됐다”고 혀를 찼다. 일상에서도 외모차별의 설움은 계속된다. 일부 결혼정보업체는 키에서 100을 뺀 이상의 몸무게를 가진 여성을 회원으로 받지 않는다.

이런 `외모 중시' 풍조는 방송, 광고 등 매스미디어가 더욱 부추기면서 확대재생산 과정을 거쳐 어느새 우리 사회의 거대한 이데올로기가 되고 있다. 최근 소비자들의 반발로 문안을 일부 수정한 ㅇ화장품의 처음 광고문안은 “그녀는 피부에 투자했다. 여자가 예쁘다는 건 경쟁력이니까”였다.

이처럼 외모나 체중은 또 스스로 통제가능한 분야로 간주되면서, `평균 기준'을 벗어난 사람은 종종 의지가 약하고, 게으르며, 자기관리를 못하는 사람으로 지목되는, `이중의 고통'을 겪는다. 코미디언 이영자씨가 날씬한 몸매로 처음 나타났을 때, 언론매체는 이영자씨를 `인간승리' 인물로 떠받들었던 것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성형수술에 대한 인식도 `자신감을 준다'며, 긍정적으로 바뀌어 이젠 “예쁜 애들이 성격도 좋다”는 말이 더이상 농담이 아닌 상황으로 바뀌고 있다. 신정혜(25·서울 신림동)씨는 지난해 여름 취업을 앞두고, 대학 4년내내 아르바이트로 번 돈 500만원을 성형수술에 몽땅 쏟아부었다. 눈밑 지방 제거, 쌍꺼풀, 코 수술을 함께 하는 이른바 `패키지' 성형이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를 보면, 패션의류나 명품시장을 제외한 `순수 미모' 분야의 연간 시장규모가 △미용성형 5천억원 △다이어트 1조원 △화장품 5조5천억원 등 무려 7조원에 이르렀다. 여성학자 한서설아씨는 이를 두고 “외모가 자본이 되는 세상을 넘어 자본이 외모를 만드는 세상이 됐다”고 지적했다.

60년대말 서구에서 외모차별은 뚱뚱한 여성, 키작은 남자 등 피해집단의 차별철폐 요구를 통해 깨져나갔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선 성별과 세대를 통털어 외모차별로 고통받는 이들이 늘어가면서도 외모차별 풍조를 반성하는 움직임은 거의 없는 상태다. 국가인권위법 30조2항에는 외모차별도 조사대상으로 규정돼 있지만, 지금껏 인권위에 외모차별 진정은 단 한 건도 접수되지 않았다. 한 인권운동가는 “외모차별은 최후의 인권 식민지”라고 규정했다.

5월 7일자 한겨레신문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