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자들,가혹행위 처벌촉구·재심청구 움직임
안기부의 조직적인 ‘북풍공작’ 사실이 드러나면서 그동안 안기부의 조작·가혹수사 의혹을 불러일으킨 시국사건들에 대해서도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움직임이 새롭게 번지고 있다. 사건 당사자들과 가족들은 “안기부의 북풍공작뿐 아니라 고문에 의해 조작된 사건들의 진상도 이번 기회에 명백히 밝혀져야 한다”며 재심 청구, 국가배상 등 법적 절차를 밟을 준비를 하고 있다.‘김형찬 고문수사 안기부원 처벌과 안기부법 날치기 무효화를 위한 대책위원회’(상임대표 홍근수)는 25일 오후 1시 안기부 청사 앞에서 모임을 열어 김형찬(28)씨를 고문 수사한 안기부원 4명을 전원 구속처벌하라고 촉구했다. 대책위는 “김씨가 96년 12월 수배를 받던 대학 후배의 자취방에 우연히 들렀다가 영문도 모른 채 안기부원 4명에게 끌려가 고문 수사를 받았다”며 “김씨는 고문의 고통을 못이겨 스스로 석유난로를 뒤집어써 중화상을 입었다”고 주장했다.
대책위는 지난해 국가배상 청구소송을 낸 데 이어 최근 천주교인권위원회와 함께 고문 안기부원의 신원 확인작업에 나섰다.
89년 전남 여천 거문도에서 의문의 주검으로 발견된 뒤 끊임없이 ‘안기부 관련 의혹’을 불러일으켜온 중앙대 안성캠퍼스 총학생회장 이내창씨 의문사 사건을 두고서도 진상을 밝히라는 여론이 높아가고 있다. 이씨 추모사업회는 이른 시일 안에 이 사건의 백서를 출간하기로 하고,그때 이씨와 함께 거문도에 동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던 안기부 여직원 도아무개씨를 비롯한 목격자 재조사를 요구했다.
88년 간첩혐의로 구속돼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지난 13일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서경원(60) 전 의원 역시 “그때 안기부 수사관들이 8시간 동안 얼굴을 때리는 등 가혹수사를 해 방북 횟수를 늘리고 공작금 전달 사실도 조작했다”고 주장하면서 진실을 밝히기 위한 모든 법적 절차를 밟겠다고 밝혔다.
또 96년 일본에서 북한 공작원에게 김일성 사망 애도문을 써주었다는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가 3·13 사면에서 풀려난 박창희 한국외국어대 교수쪽도 “극심한 고문에 의해 거짓 자백을 했다”며 재심 청구를 준비하고 있다. 박씨의 아들 재혁(28)씨는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위한 모든 조처를 취하기로 가족이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92년 대통령선거 직전 ‘남파간첩 이선실 사건’에 연루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6년째 복역중인 손병선(60)씨 가족은 국내외 인권단체에 자료를 보내고 정치인들의 탄원 서명을 받는 등 손씨 석방운동을 벌이는 한편 재심 청구 여부도 검토하고 있다.
<구본준 황상철 기자>
한 겨 레] 1998-03-26
저작권자 © 천주교인권위원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