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의사 모녀 피살사건
상태바
치과의사 모녀 피살사건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02.05.07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남편 무죄’ 원심 대법서 다시 깨
95년 발생한 ‘치과의사 모녀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뒤 항소심에서 무죄로 풀려난 남편에게 대법원이 다시 유죄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형사2부(주심 이용훈 대법관)는 13일 아내와 한살배기 딸을 목졸라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도행(36·외과의사) 피고인에 대한 상고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 사건은 남편이 사건발생 3개월여 만에 범인으로 지목돼 구속됐으나 범행을 입증할 물증이 없는데다 이씨가 범행 사실을 부인해 1심부터 치열한 법정 공방이 이어졌다. 특히 이 사건은 당시 전 부인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던 미국 오 제이 심슨 사건에 빗대 ‘한국판 오 제이 심슨’ 사건으로 불리며 주목을 받았다.

명백한 물증이나 증인이 없는 상태에서 진행된 재판과정에서 검찰과 변호인쪽은 부인과 딸의 사망시간 등 국과수와 법의학자들의 감정결과와 ‘추정’만이 가능한 정황증거의 신뢰성을 둘러싸고 공방을 벌였다.

그러나 이씨는 오 제이 심슨과는 달리 96년 2월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변호인쪽은 “불충분한 정황증거만을 근거로 내려진 판결에 승복할 수 없다”며 항소했고,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4부는 “피고를 의심할 만한 여러 정황증거가 있긴 하지만 지문이나 혈흔 등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의심스런 정황증거만으로 유죄를 인정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날 “간접증거가 개별적으로는 범죄사실에 대한 완전한 증명력을 갖지 못하더라도 증거를 종합적으로 살펴볼 때 종합적 증명력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면 유죄를 인정할 수 있다”며 원심을 뒤집었다.

한편 이씨의 변호인인 김형태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확신을 가질 정도로 엄격한 증거가 없을 경우 피고인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는 형사법상의 대원칙에 어긋나는 판결”이라며 “고등법원에서 무죄 입증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규 기자>

한겨레 1998-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