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글을 쓰면서도 솔직히 말하면 두렵다. 그가 재구속되고 또 단식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벌써 몇번째인가...71일의 단식과 또 단식, 또 단식....서서히 그의 얼굴은 속세 너머의 형상으로 변해간다....기억을 더듬기에 앞서 -그가 생각하기에- 아주 사소한 부탁부터 하고싶다.
“먹어라. 단식을 멈추어주시오.”
내가 영화평론가인 양윤모를 처음 만난것은 데뷔한 직후였으니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간다. 그는 맛난 음식을 맛본 어린아이처럼 상기된 얼굴로 나를 향해 다가왔다.
“영화 잘봤어... 속 시원해.”
그즈음 평론가를 별로 호의적으로 바라보지 않았던 터라 분명 나는 그저 그렇게 반응했으리라 기억된다. 그리고 충무로 뒷골목 선술집으로 이어진 자리에서 그는 내 곁에 앉아 못다한, 아니 맺혀있던 말들을 마구 쏟아내는 동안 상기된 그의 얼굴은 식어들지 않았다. 속으로 빨간 사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작품을 이러쿵저러쿵 이야기 하는게 불편해서 자리를 피했던 것 같다. 그 후 양윤모는 마치 오랜 친구처럼 내가 영화를 망하든 흥하든 더불어 이야기를 했고 나는 그때마다 빨간 사과를 떠올렸다.
그가 제주도에 가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안 건 뉴스를 통해서였다.
그를 평론가로 알고있던 나로서는 그의 '행동'이 의아스러웠고 성이 양씨여서 고향이 제주도 강정이었나보다 정도였다. 그러면서도 ‘제주도는 노란 감귤인데... 빨간 사과하고는 안 어울리잖아...’ 하는 엉뚱한 연상만 했다.
사실 평론가가 운동을 하는 경우는 지극히 드문 일이다. 혹은 우리나라에 그런 경우가 별로 없어서인지도 모른다. 여하튼 강정과 영화평론가로서의 양윤모는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사안이 아니었고 따라서 '왜'라는 질문만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그 의문은 지금도 여전하다. 몇 번이고, 아니 강정에 거의 일 년 넘게 들락거리면서 수십 번 물어볼 수도 있었는데 이상하게 마치 원초적이며 뻔한 질문인양 물어보지 못했다. 어쩌다 강정 구럼비에 사시게 되셨수? 그는 아무도 관심 기울이지 않았을 때부터 3년 간 강정 구럼비 중덕해안가에 천막을 치고 살며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해왔다. 사람들은 그 천막집을 중덕사라고 불렀다. 그 삼년 간 그가 무슨 생각을 했고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아마도 나는 양윤모를, 평론가이기를 그만두고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낙향한 논객 정도로 바라봤던 게 아닌가 싶다.
어쩌다 나 역시 강정을 찾아가고 구럼비가 있는 중덕해안가에서 거의 무정부주의자처럼 유유자적할 즈음 그를 스친 적이 있는지, 구속 중이었는지, 요양하러 서울에 있었는지 정확치 않다. 그만큼 나도 구럼비에 흠뻑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행정대집행이 있고 그 후에 양윤모가 오랜 단식을 마치고 나온거 같다. 그런데 그가 석방되면서 했던 짧은 연설을 들으며 나는 섬칫 놀랐다. 그는 분명 영화평론가의 직분, 역할, 신념을 말하고 있었다. 그 낯설음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영화평론가로 살면서 얻은 지혜가 있다면 자기 직업에 충실하는 겁니다. 예술가의 작품을 발견하면 그 빼어난 예술을 위해 평론가가 나서서 보호해야하고 그걸 만들고 창조한 예술가를 기려야 하고 평가해야 하는 것이 영화평론가의 역할입니다.”
잠시 내 귀를 의심했다. 감옥에서 석방되며 느닷없이 영화평론가의 역할을 들먹거리다니 이 무슨 뚱딴지인가...왠지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제가 인문학과 예술, 인생이라는 삼위일체를 통하여 얻은 결론은 구럼비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희귀한 바위였다는 겁니다. 제가 3년 간 구럼비에 살면서 구럼비와 나누었던 숱한 대화가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영적으로 영향을 주어 지펴나가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예술가에 대한 평론가의 입장이 그러할진데 (구럼비를) 목숨을 걸고 지키는 것이 영화평론가의 신념이고 할 일이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다시 말해 그는 영화평론가로서의 그의 직분을 한시도 잊지 않았으며 구럼비와 대화하며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평론가의 올곧은 자세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거 아닌가. 그는 구럼비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 아름다움을 지키고 알리려 했으며 그 서사가 널리 퍼지기를 원했던 것이다. 즉 그에게 구럼비는 거대한 한편의 영화였고 세계였다.
자신이 발견해낸 아름다움을 향한 뜨거운 사랑에 몸둘 바를 몰라했던 빨간 사과...
이처럼 온몸으로 써내려간 평론을 본적이 없다.
그 때 잊혀졌던 빨간 사과가 다시 떠올랐다. 그래, 그는 빨간 사과였지... 자신이 발견해낸 아름다움을 향한 뜨거운 사랑에 몸둘 바를 몰라했던 빨간 사과였지... 순간 희미해져버린 이십 년의 기억이 연결되며 양윤모를 다시 발견했다. 이처럼 온몸으로 써내려간 평론을 본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의 평론이 기다려지는 애독자가 된 셈이다.
그런데 그가 이어서 던진 말이 사뭇 무겁게 들렸다.
“평론가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지키고 알려야 합니다. 구럼비가 파괴되면 영화평론가로서의 제 소명은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뻔한 말이지만 이 말을 꼭 그에게 해주고 싶다.
구럼비는 결코 파괴되지 않는다. 현재 구럼비가 훼손되고 잘려나갈지라도 이미 양윤모의 평론적 삶으로 많은 이들이 그 아름다움을 인식했고 구럼비는 그렇게 환생해서 수많은 구럼비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니 영화평론가로서의 그의 소임은 그 아름다움을 발견해냈던 길, 다시 말해 중덕에 살며 구럼비와 나누었던 내밀한 대화를 우리들에게 전해주어야할 의무가 있고 이를 게을리 한다면 그는 영화평론가로서의 그의 소임을 방기하는 일이 된다. 참 뻔한 말이지만, 그 이상 그를 설득할 자신이 없다. 평론가로 돌아오라는 말밖에...
그러니 단식을 끝내시라.
더불어 나도 어서 영화를 다시 만들어 그와 빨간 사과를 씹어먹으며
구럼비보다야 못하겠지만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밤새 떠들고 싶다.
구럼비 바위에 도란도란 둘러앉아 떠든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양윤모를 석방하라!
사족처럼 한마디만 덧붙인다.
국가도 실수할수 있다.
영화평론가 양윤모도 그 점 넉넉히 알고있다.
그러니 국가도 영화평론가 양윤모에 대해 예의를 지켜주기 바란다.
그를 어서 석방하라.
올 설날, 유난히 빨간 사과가 눈에 많이 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