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무기가 평화를 가져온 적이 있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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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무기가 평화를 가져온 적이 있던가요?
  • 이미현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간사)
  • 승인 2013.04.30 18: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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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위기 속에서 피어난 평화의 목소리
지난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남과 북은 유례없이 거친 전쟁발발 위협을 주고받는 실정이다. 북한은 '조국통일대전'이니 '핵 선제타격'을 운운하며 정전협정 무효화, 남북관계는 ‘전시상황’이라는 선언까지 했다. 남한도 이에 질세라 북한 심장부를 타격하겠다며 최첨단 핵 폭격기 등을 동원한 한미합동 군사훈련을 감행했다. 남북 군 당국들이 이렇게 호전적인 언행들을 주고받는 사이 한반도 전쟁위협은 사그라지기는커녕 오히려 시민들의 불안감을 키우기만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탓에 평화활동가들 모두는 이번 해 세계군축행동의 날(Global Day of Action on Military Spending) 한국 캠페인에 남북간의 전쟁위협에 반대하고 평화를 지키라는 메시지를 담아야 한다는 데 마음을 같이 했다.

지난 4월 15일은 세계군축행동의 날이었다. 전 세계 40여 개국에서 군사비를 감축하고 무기 대신 복지를, 전쟁 대신 평화를 선택하자는 캠페인이 동시에 진행되었다. 한국에서도 24개 시민단체와 15명의 국회의원 그리고 여러 시민들이 참여하는 세계군축행동의 날 캠페인이 진행되었다. 4월 15일 당일 평화활동가들과 국회의원들은 국회 앞에 모여 ‘남북 모두 총을 내리자’는 메시지를 가지고 기자회견과 퍼포먼스를 가졌다. 기자회견에 온 참가자들은 모두 한 목소리로 한반도를 둘러싼 전쟁위협을 당장 멈추라고 외쳤다. 최근 남북이 서로 전쟁을 부추기고 있는 상황인 만큼, 남북 모두 총을 내리자는 구호가 더욱 절실하게 들린 것은 나 한 사람만은 아닐 것이다.

남북 모두 총을 내리고 함께 꽃구경을!
여의도 일대는 화사하게 피어난 꽃들로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기자회견을 마친 평화활동가들은 여의도 윤중로로 자리를 옮겨 꽃구경을 나온 시민들에게 ‘남북 모두 총을 내리고 ~~하자’라는 메시지판을 주며 평화의 한 마디를 남겨 달라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최근 전쟁위기에 할 말이 하나쯤은 있었다는 듯 많은 시민들이 평화 메시지를 남겨주었다. 그리고 다들 어색해 하면서도 활짝 핀 꽃만큼이나 화사한 얼굴로 인증샷을 남겨 주었다. 메시지 대부분은 남북 모두 총을 내리고 함께 춤을 추자, 밥을 먹자, 서로 사랑하자와 같은 소소한 것들이었지만 남북간 단순 교류조차도 불가능한 지금 상황에서는 이러한 작은 희망사항 조차도 한반도 평화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만든다.

세계군축행동의 날 캠페인은 온라인에서도 진행되었다. 남북 군사적 대치상황을 풀고 평화를 만들어가자는 메시지를 적고 인증샷을 찍어 올려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됐다. 서울 대한문 앞 노동자들과 시민들, 그리고 제주 강정마을의 지킴이들부터 유쾌하면서도 간절한 평화의 메시지가 올라왔다. 멀리 해외에서도 한반도 평화를 기리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누구 맘대로 전쟁질이야! 총대신 꽃! 남북 모두 총을 내리고 Let's Dance!! 남북 모두 총을 내리고 무기를 버리고 나무를 심자! 남북 모두 총을 내리고 봄맞이 대청소를 하자! 전쟁은 시르다 우리에게 평화를! 와이카노 남북 이제 고마하고 사이좋게 지내라! Not in My Name! 국민생명 볼모로 전쟁놀이 하지마! 무기는 밥이 될 수 없어요! 우리 세금으로 강정을 군사마을 대신 생명평화의 마을로! .....’ (peacenowkorea.tumblr.com)


시민들 하나하나의 목소리가, 그 바램들이 세계 평화군축 운동에는 참으로 소중하다. 한반도에 전쟁위기가 없어진다 해도 평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그쳐서는 안된다. 전쟁위협은 이후 군사비 증강의 빌미가 되고, 결국 군비경쟁 끝에 또 다른 전쟁위기 상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군축행동의 날 캠페인은 바로 이러한 점에 주목한다.

전쟁준비가 아니라 전쟁 가능성을 줄여야!
올해로 세 번째를 맞는 '세계군축행동의 날' 캠페인은 매년 4월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세계 군사비 지출에 대한 연례보고서를 발표하는 시기에 맞추어 개최된다. 올해도 이 날 전 세계 국가들이 얼마큼의 군사비를 지출했는가 보여주는 자료가 발표되었다. 이번에 발표된 보고서에 의하면 전 세계는 지난 한 해 1조 7530억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비용을 군사비로 지출했다. 이 숫자만으로는 그 규모를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데, 전 세계 군사비의 약 20%만 ‘개발’에 쏟아도 절대적인 빈곤상태에 처한 인구를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고 하니 조금은 감이 올 듯하다. 한국 역시 많은 금액을 군사비로 지출했는데, 아시아에서 4번째, 전 세계에서는 12번째로 많은 비용을 지출했다. 분단 상황이라는 것을 감안하고도 적지 않은 금액이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금액을 군사비에 지출하고도 지금의 전쟁위기는 왜 막지 못한 걸까? 군사비가 부족했던 것일까? 최근 박근혜 정부는 대선공약 재정마련을 위해 대규모 적자 국채 발행을 계획하면서도 군사비는 지속적으로 늘리겠다고 약속한 상태이다. 북한과의 전쟁위기 상황에 국방비를 더 늘려 보다 강력한 무기를 구매하고 더 많은 군사력을 전선에 배치해야한다는 국방부의 안보논리가 힘을 얻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다 강한 무기와 더 많은 군사비가 과연 한반도 주민들의 생명과 평화를 보장해 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평화를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준비가 아니라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을 줄여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정부는 망각하고 있지 않은지 뒤돌아봐야 할 일이다.

군비경쟁이 아니라 군비감축이 평화를 가져옵니다
군사력은 안보 수단의 하나에 불과하다. 가장 손쉽고도 피해가 없는 ‘대화’라는 평화적 수단을 멀리하고 강력한 무기만으로는 국민들의 안전을 지킬 수 없다. 특히 요즘과 같은 최첨단 무기로 치르는 현대전에서 전쟁은 곧 공멸을 뜻한다. 단 한발의 미사일만으로도 남과 북은 엄청난 인명과 재산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군사력 증강이 전쟁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해도 복지비, 교육비를 희생해 무기구매와 전쟁준비에 막대한 규모의 세금을 쓰고도 주변국의 군비증강과 군사력 대치상황을 초래하는 악순환은 막을 수 없다. 그러니 일부 정치가들과 언론들이 떠들어 대는 ‘남한 핵무장론’으로 전쟁을 막는다는 발상은 어림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강력한 군사력에 의존한 안보전략만을 따른다면 한반도 평화의 길은 험난할 뿐이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먼저 군비 감축을 시작하면 된다. 현실주의 안보관에 집착한 이들에게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일지 모른다. 하지만 역사상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한 측에서 경계를 낮추고 군사적 수단보다 대화와 협상을 통해 신뢰를 쌓으려 시도한다면 나머지 주변국들은 군사력을 앞세운 날선 정책을 계속해서 유지하기 어렵다. 동북아 평화도 이렇게 시작될 수 있다.

그리고 누군가 이러한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면 그것이 한국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남북 대치상황이 동북아시아의 군비 경쟁에 좋은 빌미가 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런 탓에 아시아 지역 국가들의 군사비 증가율은 전세계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높은 수준을 지속해 왔다. 남북 대치상황의 당사자인 남한이 먼저 군비를 줄임으로써 군비경쟁의 악순환을 끊는다면 북한과 주변국들의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곧 지역의 평화를 가져오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물론 한국이 군축노력의 첫 스타트를 끊기 위해서는 평화적 수단에 의한 안보만이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강한 신념이 꼭 필요하다.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는 쉽지 않겠지만, 세계군축행동의 날 캠페인에 동참해 준 보통 사람들의 평화를 소망하는 마음들이 이러한 신념을 실현해가는 힘이 될 것이다.

4월 15일 국회앞에서 열린 ‘세계군축행동의 날’ 기자회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