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폭도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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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폭도는 누구인가?
  • 천주교인권위
  • 승인 2002.05.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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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22주기를 맞이하며
[지난 18일 (광주에서) 수 백 명의 대학생들에 의해 재개된 평화적 시위가 ... 상당수의 타 지역 불순 인물 및 고첩들이 사태를 극한적인 상태로 유도하기 위하여 ... 터무니없는 악성 유언비어의 유포와 공공시설 파괴, 방화, 장비 및 재산 약탈 행위 등을 통하여 계획적으로 지역감정을 자극 선동하고 난동 행위를 선도한 데 기인된 ... 이들은 대부분이 ... 깡패 등 부랑배들로서 급기야는 예비군 및 경찰의 무기와 폭약을 탈취하여 ...]

80년 당시 5월의 광주는 이런 모습으로 다가왔다. 모든 언론은 학생들의 평화적 시위에 대한 공수부대원들의 무자비한 진압과 잔악한 만행 그리고 그 잔인성을 목격한 광주 민중들의 울분과 분노를 철저히 외면한 채 침묵하고 있었다. 신문사들은 단 줄의 기사도 싣지 않았고, TV 역시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연일 현란한 쇼와 우스개 개그, 그리고 말장난이 난무하는 연속극으로 나흘을 채우고 난 5월 22일에야 계엄사에 의해 발표된 '광주 사태'를 이렇게 짤막하게 다루고 있었다.

링컨의 얘기였던가? 모든 사람을 얼마동안 속일 수 있고 또 몇 사람을 늘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고. 하나하나 벗겨지는 거짓과 왜곡, 그 속에서 몸서리치게 드러나는 잔인함과 참혹함, 그러나 울분과 비통함 속에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았던 광주 민중, 그들과 비교되며 드러나기 시작하는 신군부의 역겨운 모습들과 그들의 정권 야욕 그리고 정권 찬탈 과정. 서서히 밝혀지는 진실을 통해 우리는 정의와 역사 앞에 알몸으로 선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었고 마침내 처절한 부끄러움과 분노로 오열해야만 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 80년 오월의 광주를 통해 고난과 죽음 없이는 이룰 수 없는 깨달음으로의 부활을 경험했다.

그러나 막상 그 폭도라고 불리우던 사람들이 민주 항쟁의 주역으로 다시 태어나기까지 우리는 8, 90년대를 수없이 많은 피와 눈물과 땀을 흘리며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야 했다. 박관현, 박종철, 이한열, 이철규, 강경대, 박승희, 조성만 등 많은 젊은이가 꽃다운 목숨을 바쳐야 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감옥에서 고초를 겪었으며 더 많은 사람들이 민주화 투쟁을 위해 가족과 헤어져 살아야 했다. 1997년 12월 5.18 특별법이 제정되기까지 가족들이 겪었던 좌절과 비통함, 그리고 울분의 세월은 결코 짧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아직도 국가보안법이라는 서슬 퍼런 괴물에 의해 수많은 사람이 감옥에 갇히어 있고, 간첩이라는 누명으로 죽어 가고 고통받았던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의 진실은 2002년 오월 지금에도 외면당하고 있다. 인혁당 사건, 그 잊혀진 27년 전 죽음들을 떠올리면 지난 시절 굴절된 현대사의 질곡 속에서 고통 받고 희생당한 이들에 대한 명예 회복조차 이렇듯 어렵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평화와 화해의 세상을 향한 여정에 고단함과 피로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진정 폭도는 누구인가? 군화발과 대검으로 무자비하게 광주 민중을 짓밟고 도륙한 군인들만이 아니었다. 그때 침묵으로 일관했고 아직도 역사의 진실 앞에서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족벌 언론, 그리고 적당히 스스로를 보수로 지칭하며 자신들이 저질렀던 과거에 대한 참회도 없이 자유와 민주를 불러대는 수구 인사들,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틈만 나면 과거 민주화 운동에 대해 비아냥거리고 매도하려 한다. 최근 동의대 사건의 민주화 운동 인정에 대한 그들의 전면적 부정과 도전적 발언은 사건의 발단과 전개 과정을 무시한 또 다른 폭력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그들이 자신들의 친일 죄과를 덮기 위해 그리고 자신들의 기득권과 사욕을 위해 해방 전후 공간에서 수많은 우국지사에게 저지른 폭력을 또렷이 알고 있다. 자신들의 뜻과 생각이 다르다고 권력에 기대어 휘둘렀던 부당한 펜놀림과 용공이란 야유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죄 없이 끌려가 죽임을 당하고 고통을 받았던가? 또 그들은 전후의 현대사 공간에서 독재의 원흉으로 혹은 주구로서 얼마나 많은 양심적 인사들을 몰아내고 물어뜯고 할퀴었는가?
오월은 싱그럽고 아름다운 달이다. 다행히 시대는 급격히 변화하고 젊은 세대는 다양한 논의를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역동적이다. 우리 다시 저 벽을 넘어설 소망을 이야기하자. 우리에게 힘을 주었던 열사와 의인들 그리고 이름 없이 산화해 간 많은 분들을 떠올리고, 보잘것없는 우리에게서 희망을 보고 있는 이들을 위해. 그 분도 함께 하실테니까.

[교회와 인권 74호] 김 용 수 천주교인권위원회 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