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MJ의 경우
임자운 (변호사, 법률사무소 지담)
그는 잘 웃고 또 잘 웃긴다. 세상 유쾌한 사람이다. 특히 술자리에서 그의 말 한마디에 좌중이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본인이 상주인 장례식장에서도 테이블들을 다니며 조문객들을 웃겼다. 그래서 나는 함께 술을 마시면 가장 즐거운 사람으로 그를 꼽는다.
그는 손재주도 좋다. 특히 요리솜씨가 뛰어나다. 2015년 10월,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은 삼성전자의 교섭 약속 파기에 항의하며 그 회사 건물 앞에서 무기한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두달 후, 한파가 덮친 농성장에도 크리스마스는 다가오던 그런 날, 그는 커다란 들통을 들고 농성장에 왔다. 그리고 만두를 만들었다. 재료를 달리하는 네 종류의 만두를 준비해 왔는데, 그 이름들이 모두 삼성을 향했다. 사과할 만두(고기만두), 책임질 만두(김치만두), 대화할 만두(새우만두), 보상할 만두(매운 군만두). 나는 알 굵은 새우가 통으로 들어간 만두를 그때 처음 맛 보았다. 육즙이 캐롤처럼 터져나왔다. 만두계에서 표현할 수 있는 최상의 맛이라 생각했다. 그는 화력 약한 휴대용 버너 탓에 실력 발휘가 안된다며 투덜거렸지만, 버너 화력마저 충분했다면 이미 만두가 아니었을 거라 생각했다.
그는 사실 꽤 유명한 사람이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크고 유명한 기업이 제일 싫어하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이 회사가 그를 얼마나 싫어했는지는 최근 어느 판사들이 작성한 140여장의 문서(판결문)에 조목조목 적혀 있다. 회사는 그를 이른바 ‘MJ(문제인력)’의 대표 주자로 지목한 후, 그와 그의 동료들을 괴롭히기 위해 회사 건물 지하에 비상상황실을 설치한다. 사람을 붙여 그와 그의 가족들을 미행ㆍ감시하도록 하고, 동향을 파악해 문서로 보고하도록 한다. 그가 자녀들과 함께 공원에 놀러갔을 때도 시간대별로 이동경로, 식사 주문 내역, 흡연여부 까지 세세하게 보고 받는다. 놀랍게도 그에 대한 미행과 감시에는 현직 경찰관 까지 동원된다. 회사는 경찰을 사주해 그의 차량을 조사하게 했고 함정 음주 단속까지 벌이게 했다. 경찰의 보고 내용 중에는 그가 하필 “맥주를 한캔 밖에 안마셔” 혹은 “대리기사를 부르는 바람에” 체포에 실패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회사는 결국 원래 계획했던 대로 그를 징계해고 한다. 주된 해고사유는 “임직원의 개인정보와 회사의 영업비밀을 외부로 유출한 것”과 “근무처에서 경찰에 연행됨으로써 직원으로서의 품위를 손상한 것” 등이었다. 하지만 그가 회사 컴퓨터를 이용해 외부 이메일로 전송한 것은 임직원의 이메일 주소와 회사의 매입ㆍ매출 내역이었다. 영업비밀이라고 할 수도 없었고 노조활동의 일부였을 뿐이다. 경찰에 연행된 이유는 친구의 차량을 ‘대포차량’(등록된 소유자와 실제 사용자가 다른 차량)인 줄 모르고 잠시 운전했다 벌어진 일인데, 그 또한 회사의 사주를 받은 경찰이 계속된 미행과 정보수집 끝에 적발한 것이었다.
그와 그의 동료에 대한 회사의 괴롭힘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영업비밀 유출 누명을 씌워 형사 고발을 하기도 했고,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동료에게 정직 처분을 내려 무급 상태로 만들기도 했다. 회사는 동료의 아내가 건강 문제로 상담한 기록까지 무단으로 수집했다. 그와 그 동료들이 노조 설립 후 4년간 가장 많이 한 일이, 각종 수사와 조사를 받거나 소송을 준비하거나 재판에 나가는 일이었다 한다.
회사가 이렇게 까지 그를 싫어하고 괴롭혔던 이유는 그가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행사했기 때문이었다. 헌법과 법률에 따라 모든 노동자에게 부여되는 연대할 권리. 노동조합을 만들고 관련 활동을 할 수 있는 권리. 회사와 단체로 협상할 수 있는 권리.
회사는 그의 근무 장소에서 이른바 ‘불온 문건’(노조 설립 계획에 관한 문서들)이 발견되자 마자, 전사적 괴롭힘에 돌입했다. 그가 노조 설립 준비에 나서자 회사는 저들 말로 “친사(親社)” 노조(우리 말로 ‘어용’ 노조) 설립에 착수했고, 그와 그의 동료들이 노조를 설립하기 직전에 주동자인 그를 징계 해고 했다(그 직후에 신고된 노조는 “주동자에 대한 징계를 회피하기 위한 방탄 노조”라고 ‘언론대응’ 했다). 그럼에도 노조 활동이 계속되자, 회사는 “노동부, 검ㆍ경 등 유관기관의 협조”하에 그와 그의 동료에 대한 형사 고소와 추가 징계에 나선다. 회사는 이를 “노조 勢확산 차단 조치”라 불렀다. 이 모든 조치들이 2013년에 어느 국회의원이 폭로한 ‘S그룹 노사전략’ 문건에 적힌 그대로 였다.
오래 전부터 이 회사를 상징하는 말로 ‘무노조 경영’이란 게 있었다. 노동조합을 허용하지 않는 경영. 이는 명백하게 ‘불법’ 경영이고, 따라서 이를 실현하기 위한 행위들은 모두 범죄 행위였지만, 우리 사회는 이것을 마치 대단한 경영 전략이라도 되는냥 표현하고 평가했다. 고용노동부와 검찰도 이 회사의 이러한 공공연한 범죄행위에 오래도록 눈을 감았다. 그러니, 이 회사에서 노동조합을 만들려 했다간 조직적인 괴롭힘에 시달리다 결국 쫓겨 나고 만다는 걸 누구나 알고 있었다. 이 또한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그는 왜, 뻔한 위험까지 감수하며 노조를 만들었던 걸까. 경찰공무원을 꿈꾸다 뜻밖의 ‘색약’ 판정으로 포기하고, 잠시 아르바이트로 일했던 에버랜드에 눌러앉아 버렸다 한다. 그 때부터는 원체 불합리한 일을 참지 못하는 성격이 문제였다. 특히 IMF 때, 동료들에게 수시로 전화를 걸어 사직서를 들이미는 회사 인사팀의 행태를 참지 못했다. 회사에는 노조가 없는 대신 ‘노사협의회’가 있었다. 2년 임기의 협의회 대표를 3번 했다. 하지만 그 협의회라는 게 원래 노조 설립을 막는 수단이었다. 한계가 분명했다. 그래서 2008년부터 진짜 노동자 단체(노동조합)의 설립을 준비했다. 법이 있으니 못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그는 회사가 꼽는 최고의 MJ가 되어갔다.
그의 이름은 조장희. 금속노조 삼성지회 부지회장이다. 그는 삼성을 상대한 모든 소송에서 전부 승소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에 대한 삼성의 징계 해고를 모든 법원이 “무효”라 했고, 그에게 덧씌워진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도 법원은 “무죄”라 했다. 그와 그의 동료들은 삼성의 노조탄압 행위에 대한 손배해상 판결도 받아냈다. 그리고 작년 12월, 법원은 그와 그의 동료들에 대한 온갖 악행을 기획하고 지시한 삼성 고위 임원들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얼마 전, 나는 모처럼 그와 낮술을 마셨다. 그가 쉴새없이 쏟아내는 온갖 무용담들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그 특유의 유쾌한 허세스러움이 그날 더 반짝 거렸다. 사실 허세스럽기로 따지면 그의 카카오톡 프로필만한게 없다. “내가 말했잖아, 언제나 이긴다고.” 허세스럽긴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