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인들이 지구에 좀 더 오래 머무를 수 있도록
책 <쓰레기책_왜 지구의 절반은 쓰레기로 뒤덮이는가>를 읽고
배여진(천주교인권위원회 이사)
얼마 전, 둘째의 초등학교 입학식 날, 온 가족이 코로나19에 확진이 되었다. 내가 생각했던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그런데 진짜 최악은 따로 있었다. 바로 쓰레기. 일주일 동안 뒷베란다에 일반 쓰레기와 분리수거가 필요한 플라스틱, 음식물 쓰레기가 쌓여가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입맛을 상실한 네 식구가 생각보다 ‘덜’ 먹어 다른 때보다 쓰레기양이 줄었다는 것.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책 제목이 <쓰레기책>이다. 우리 집 꼬마들은 “엄마, 이 책이 쓰레기야? 쓰레기를 왜 읽어?”라며 물었고, 아이들의 말마따나 언젠가 이 책도 쓰레기가 될 날이 있겠지, 하는 생각에 긍정도 부정도 못 하고 얼버무렸다. 이 책은 저자 이동학이 우리가 버린 쓰레기들이 어디로 가는지, 그 안에서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2년여 동안 61개국 157개 도시를 유랑하고 쓴 책이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했던가. 우리가 사용하고, 먹고 배출한 쓰레기들이 신속한 수거로 인해 눈에서 멀어지니 마치 쓰레기를 배출한 적 없는 것처럼, 아니 쓰레기가 지구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착각하고 사는 것 같다. 인간에게 도움을 주고 떠난 쓰레기들과 이토록 쿨한 이별이라니. 좀 더 진득하게 매달려봐도 될 것 같은데 말이다.
저자는 우리가 버리는 쓰레기들이 어디로 모이는지 추적한다. 가까이는 근처의 소각장에서부터 멀리는 해류에 쓸려 해양 쓰레기들이 모이는 바다 건너 나라의 마을까지 간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국의 쓰레기뿐만 아니라 기후변화로 태풍과 홍수가 육지를 쓸어버리고 바다까지 떠내려온 쓰레기들, 선박의 해운 과정에서 바다로 쏟아진 컨테이너의 쓰레기 등이 육지와 바다 곳곳에서 해류를 따라 몇몇 특정 바다로 쓰레기가 모여 그 피해를 고스란히 안고 사는 필리핀의 바세코 마을을 소개한다. 또 먹고 살기 위해 무작정 도시로 나온 사람들로 인해 심각한 환경오염이 발생하고 있는 몽골, 모여있는 쓰레기 더미를 뒤져 생계를 꾸려 나가는 이집트 카이로 외곽의 모카탐 등 단순히 환경오염을 넘어 빈곤과 환경문제가 뒤엉켜 있음을 꼬집는다.
지금은 하늘공원과 캠핑장으로 더 알려진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을 기억해본다. 1960년대 서울의 인구가 증가하면서 늘어난 쓰레기를 매립하던 곳이 바로 난지도이다. 1993년까지 15년간 서울시에서 발생하는 거의 모든 종류의 쓰레기를 매립하였는데, 심각한 공해 문제로 쓰레기 반입이 중단되고 지금은 공원이 되었다. 거대한 쓰레기산으로 들어가 난지도 사람들과 1년여 쓰레기를 주워 먹고 살고, 책 <난지도 사람들>을 쓴 르포작가 유재순에 의하면 난지도에 살던 사람들은 쌀만 빼고 모든 의식주 해결을 쓰레기 더미에서 했고, 썩어들어가는 생선토막을 주워 구워 먹고, 숟갈을 주어 밥을 떠먹었다고 한다. 그 쓰레기 더미들이 지금은 공원이 되었다고 해서 그들의 삶이 없던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마치 복사하여 붙여넣기라도 한 것처럼 난지도 사람들과 같은 삶을 살고 있는 바다 건너 건너 사람들의 삶이 우리 눈앞에 없다고 해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책 <쓰레기책>은 지구를 지키기 위한 책이기도 하지만 쓰레기로 덮여가는 지구에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기도 하다. 난지도 사람들처럼 쓰레기를 가장 가까이에 두고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빈곤하거나 강대국에 큰소리 칠 수 없는 약소국의 국민들이다. 2018년 이전까지 중국은 전 세계로부터 56% 이상의 쓰레기를 수입해왔다고 한다. 중국으로 쓰레기를 수출하는 나라들은 쓰레기를 처리하는 방법이 없어서였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책 <쓰레기책>에 따르면 중국으로 쓰레기를 수출하는 비용이 자국에서 처리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국에서는 어떻게 저렴한 비용으로 쓰레기 처리가 가능했던 것인가. 바로 저렴한 인건비 때문이다. 결국 쓰레기를 가장 가까이에 두고 사는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이다.
저자는 쓰레기 문제의 핵심을 ‘자본주의’로 바라본다. 자본주의는 끊임없는 소비를 바탕으로 지속가능성이 유지되는 구조에 놓여 있고(p141), 자본주의는 앞으로 질주할 곳만 바라보며 이후에 남을 문제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p144)고 지적한다. 비단 소비와 생산의 문제뿐만 아니라 위에서 살펴본 빈곤의 굴레까지 얽혀 있으니 쓰레기의 문제 해결이 그리 간단하지는 않을 것 같다.
버려지는 폐기물들과 더불어 버려지는 음식물들도 골치다. 유엔은 식량불안에 처해 있는 인구가 약20억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한다고 한다. 5초에 한 명의 어린이가 굶주림으로 죽어가는데 책 <쓰레기책>에 따르면 생산되는 식량의 3분의 1은 어딘가에 버려지고 있다고 한다. <쓰레기책>의 부제인 ‘왜 지구의 절반은 쓰레기로 뒤덮이는가’라는 질문은 유엔인권위원회(현 유엔인권이사회) 식량특별조사관으로 일한 장 지글러의 책 제목이자 질문인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와 일맥상통한다.
저자는 ‘음식물 쓰레기는 나의 문제이며, 도시의 문제이며, 세계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식량의 문제이며, 기후변화 문제이며 지구의 문제입니다. 나의 문제는 곧 인류의 문제입니다’(p206)라고 말한다. 쓰레기는 곧 ‘인류’의 문제라고 말하는 저자는 거창한 실행계획을 제안하지 않는다. 대신 이런 질문을 던진다.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우리 모두가 그레타 툰베리가 될 수는 없다. 저자는 상상하고, 시도하고, 부서지고 실패하고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 무너져도 다시 쌓고, 다시 시작하자고 말한다. 난 비싼 돈 들여 산 아이들의 장난감들과 옷들을 토끼밥 마켓에 더 적극적으로 판매를 해보겠다. 안 보는 책들도 부지런히 올려보겠다. 패스트 패션에 반기를 들고 슬로우 패션의 자세로 옷을 좀 덜 사보도록 노력하겠다. 번지르르한 계획보다 당장 내가 실행할 수 있는 쉬운 계획이 지구인들이 지구에 조금 더 오래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자, 이 글을 읽은 당신, 이제 무엇을 해볼까요?